"그동안의 마이데이터 서비스는 이제 한물갔다."
2022년 1월 태동해 갓 자리매김을 시작한 마이데이터 서비스에게 이 무슨 매정한 소리인가 싶겠지만 안타깝게도 사실입니다. 토스와 뱅크샐러드, 양대 핀테크 업체가 촉발한 자산관리 서비스와 개인정보 활용에 대한 관심은 3년여간의 법적 공방을 거쳐 2020년 1월 데이터 3법 개정안이라는 형태로 법제화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동안 개인신용정보를 취급하던 금융∙통신 업계는 합법적이며 체계적인 방법으로 신용주체(개인)의 신용정보를 통합 수집하여 저마다의 서비스(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출시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후 2년간의 표준화와 시스템 구축을 거쳐 2022년 1월, 마침내 5대 시중은행을 비롯한 총 33개 업체가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오픈하였습니다.
마이데이터 사업자(본인신용정보관리업 허가사업자)들은 저마다 개성있는 브랜드와 톡톡 튀는 홍보 문구를 앞세워 사용자 모집에 나섰지만 한결같이 공통적으로 갖추고 있는 서비스가 있었으니 바로 그들의 선조 격이랄 수 있는 양대 핀테크 업체가 선보였던 통합자산관리 서비스입니다.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이 통합자산관리 서비스가 출생 4개월 만에 한물갔다는 평가를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데이터 3법 개정 이후 마이데이터 사업자 허가를 받기 위해 대부분의 금융∙통신사가 앞 다투어 심사대에 올랐습니다. 2022년 4월 현재 55개 사업자가 허가를 받았으며 연말까지 20여 개사가 추가될 전망입니다. 다만 올해부터 진행되는 사업자 심사는 좀 더 까다로워졌습니다. 2022년 4월 13일 금융위는 "금융 관련 데이터의 단순 중개∙매매만으로는 사업자 허가를 받지 못할 것"이라며 마이데이터 허가 기준이 변경되었음을 공지했습니다. 통합자산관리가 마이데이터의 핵심 요소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미 충분히 많은 사업자가 이 서비스를 갖추고 있어 더 이상 필요없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아울러 참신한 서비스에 대한 요구로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마이데이터 사업자가 통합자산관리 서비스만 들고 시장에 나온 것은 아닙니다. 수집한 개인 신용정보 데이터를 기반으로 저마다의 파생 서비스도 갖추고 있습니다. 신용카드 소비 패턴을 분석해 자사∙관계사의 카드를 추천해주는 금융상품 추천 서비스부터 사용자의 자산 관리 목표를 물은 뒤 목표 달성을 위한 소비∙지출∙투자 계획을 컨설팅하는 생애 자금설계 서비스까지, 비록 같은 데이터를 수집했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려는 많은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심 서비스가 같은 30여 개의 사업자가 동시에 등장한 것은 빠른 시장 포화를 불러올 것이 자명합니다. 금융 당국의 요구가 아니더라도 후발 사업자는 선두권 업체와 유사한 서비스로는 시장에 진입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앞서 시장에 진출한 사업자들도 새로운 서비스나 변화 없이 안주하다가는 어렵사리 확보한 고객을 참신한 서비스로 무장한 신규 사업자에게 언제 빼앗길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모두에게 동일한 데이터가 제공되는 상황에서 지금보다 더 새롭고 나은 서비스가 나올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해법도 금융 당국이 준비해두고 있습니다. 개인정보위원회는 지난 4월 12일 마이데이터 형식-전송방식 표준화 사업 착수보고회를 개최하며 기존의 금융 분야 마이데이터가 아닌 전 분야 마이데이터 표준화 사업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금융위원회 주관으로 발 빠르게 준비한 금융업 뒤를 이어 유통, 교육, 국토∙교통, 문화∙관광 등 개인정보 전체를 아우르는 "진짜 마이데이터 서비스" 기틀을 마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업이 본격화되면 짧게는 내년, 금융 분야의 선례를 참조하면 2년 후인 2024년부터는 지금보다 다양한 개인정보를 수집해서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됩니다. 이쯤 되면 기존의 마이데이터를 완전히 판올림한 "마이데이터 2.0"으로 부를 만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새로운 데이터가 모이면 그동안 기획할 수 없었던 색다른 서비스가 출현하게 될 것은 당연합니다. 기존 마이데이터 사업자와 예비 사업자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시점이 되면 비로소 마이데이터 사업자들은 양대 핀테크 업체의 서비스로부터 독립하여 자신들만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사업자들 간에는 새로운 세상에서 맞이하는 첫 진검승부의 장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마이데이터 2.0 시대에 어떤 서비스들이 우리 앞에 선보일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의 어떤 정보가 제공될지 또 어떤 사업자가 어떤 참신한 기획으로 우리를 놀라게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일단 내년 초쯤에는 주어지는 정보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 진행 중인 "마이데이터 형식-전송방식 표준화 사업"이 2023년 1월에 종료되기 때문입니다. 이 전송방식 표준화 결과가 공개되면 기술적으로는 이종 산업 간의 데이터 교환 기술을 빠르게 습득해 기존 금융 분야 데이터와 연계하는 허들을 넘어야 하고, 사업적으로는 새로운 정보와 융합한 참신한 서비스를 찾아내야 할 것입니다.
마이데이터 사업자들은 다시 한번 새로운 출발선에서 서비스 기획과 시스템 구축이라는 단거리 질주를 준비하게 됩니다. 하지만 새로운 데이터라 하더라도 결국 모든 사업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기 때문에 선도 업체를 참조∙모방하기 시작하면 또다시 시장 포화의 벽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누가 먼저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에 옮겨 발 빠르게 서비스를 구현해 내는지가 관건이 될 것입니다. 앞선 사업자는 추격해오는 이들을 리드해가며 고객을 유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두를 유지할 수 있는 핵심 동력은 서비스에 대한 아이디어와 구축 역량입니다. 다만 같은 정보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로는 한계가 명확합니다. 개인정보보호법이나 신용정보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다른 마이데이터 사업자들이 수집하지 않고 있는 개인정보를 찾거나 만들 수 있다면 확실히 남들과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미 많은 마이데이터 사업자가 차량이나 부동산 시세를 개인정보와 결합하여 개인자산정보를 수집∙서비스하고 있습니다. 공공데이터로 공개된 정보를 개인정보와 결합해서 새로운 개인정보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 같은 방식은 앞으로도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사용자에게 동의를 구해 가족관계나 인맥정보를 얻게 된다면 기존의 개인화된 라이프스타일 컨설팅을 벗어나 가족∙친구∙동료를 아우르는 인적 네트워크 기반의 컨설팅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수치화된 정형 정보만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게임이나 심리테스트 같은 부가서비스로 개인의 취향, 희망 같은 비정형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그에 따른 새로운 서비스 기획이 가능해집니다.
택시를 자주 이용하는 사용자에게 승용차 구입을 추천하던 종전의 서비스와는 달리, 친구가 고가의 수입차를 샀을 때 그보다 상위 기종을 구입하기 위한 자금 운용 컨설팅을 제공한다면 어떨까요? 파트너의 소비 성향과 여행지 선호도에 맞춰 생일파티와 해외여행 계획을 만들어준다면? 이러한 서비스가 가능하게 되면 마이데이터는 "정보 주권"을 넘어 "인생 파트너" 서비스로 자리매김할 될 것입니다.
마이데이서 비즈니스에서 선두를 차지하고 유지하려면 아이디어와 기획력만으론 부족합니다. 다양한 공공∙공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정보 수집 시스템을 갖춰 참신한 기획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아직 전 분야 마이데이터는 수집 범위와 방법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공공∙공개 데이터는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마이데이터 비즈니스의 지평을 넓힐 2023년, 2024년이 되기 전에 필히 준비해둬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데이터를 먼저 찾아내고 확보할 수 있는 수집 시스템입니다.
조만간 마이데이터 2.0 시대의 막이 오르고 모든 사업자가 다시 한 번 동일한 출발선상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 전에 준비를 마쳐야 합니다. 공개될 정보를 예측하고 준비해야 할 것들을 잘 갖춰둔다면 더 이상 같은 출발선이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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