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콜센터에 전화를 걸면 통화연결음으로 “제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우리 엄마가 상담드릴 예정입니다.”라는 아이의 앳된 목소리가 나온다. 앱에서 나는 에러 때문에, 1시간씩 걸리는 통화대기 때문에 치밀어 오르던 온갖 짜증을 눌러 앉히고 이성을 찾게 해 주는 멘트다. 콜센터 상담원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상담원께 짜증부터 내곤 했다. 물론 이 통화연결음 하나로 진상고객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실제로 이 통화연결음을 도입한 이후의 효과는 고객이 친절하게 한마디를 하는 경우는 겨우 8.3% 증가했을 뿐이다.[1]
상기 통화연결음으로 생겨난 콜센터 상담원에 대한 관심으로 콜센터 상담원을 소재로 하는 [전화벨이 울린다]라는 연극을 관람하게 되었다. 연극은 전화벨이 신경질적으로 울려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콜센터 상담원 수진은 요즘들어 도무지 감정조절을 할 수 없다. 요금 때문에 다짜고짜 화를 내는 고객을 향해 자신도 모르게 욕을 해버리고 만 것이다. 스트레스로 악몽에 시달리던 수진은 고시원 옆방에 사는 연극배우 민규에게 연기지도를 부탁한다. 자신의 감정과 상관없이 웃을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진은 자신의 바람대로 가면을 쓴 채 고객을 대할 수 있게 된다. 업무평가 1등도 하고 포상금도 받게 된다. 사건은 그 즈음 터진다. 상담전화를 통해 욕설을 했던 고객의 개인정보를 찾아 수차례 전화해 욕을 해버린 어느 직원 때문에 회사가 고소를 당하게 된 것이다.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2팀의 우수사원 지은이었다.
“난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저들은 괴물이고 나는 인간이니까 괜찮다고. 근데 안괜찮은가봐요. 나도 괴물이 돼가고 있었나 봐요.” 지은은 자신의 마음속에 커져갔던 빨간불을 미쳐 끄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한다.
콜센터 상담원은 항공 승무원 등과 함께 감정노동 강도가 가장 세다고 할 정도로 극한의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2] 연구 결과에 따르면 콜센터 근로자들은 일하면서 겪는 스트레스가 심해 이직률이 22%에 이른다.[3] 실제 콜센터 상담원 일상을 들여다 보자. 콜센터 상담원은 좌우 70~80cm의 파티션 안에서 옆사람과 대화 한마디 없이 하루종일 수십통의 콜을 받아야 한다. 화장실 다녀오는 것도 단톡방에 보고해야 한다.[4] 모 회사의 콜센터 상담사들은 하루 평균 80콜의 전화를 응대하고 목표 콜수를 채우지 못하면 사유서를 제출하며 화장실 가고 물 마시는 시간 포함 휴게시간이 30분밖에 안 된다. 휴식휴게 이석하는 시간이 초 단위로 체크가 되는 전자감시 시스템으로 관리되어 기준 미달 시 연봉이 삭감된다.[5] 진상고객으로부터 “남자 직원 바꿔. 이 씨XX아”, “용역하고 있는 주제에. 미X새X” 등 반말과 인격모독성 발언에 성희롱까지 들어도 담배 한대, 차한잔 마시며 숨돌릴 겨를이 없다.[11] 여기에 상급자나 QA강사들이 ‘교육과 전화 품질 모니터링’이라는 명목 하에 상담원과 고객과의 통화를 엿듣고 이에 대한 피드백을 한다. 상담원의 멘트 하나하나를 누군가 엿듣고 실시간으로 평가하고 체크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압박이 된다.[6] 여기에 고객의 문의를 처리하기 위해 택배 현황을 알아본다든지, 반품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등의 후처리 시간이 길어지면 목표 콜수를 못 채우게 되고 당장 상급자로부터 후처리 빨리 하라는 독촉을 받는다.[7] 상담이나 후처리를 위해서는 방대한 양의 업무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특히 금융권이나 통신업종 콜센터는 이로 인해 매주 또는 격주로 시험을 본다. 이 시험성적은 업무평가에 들어가고 인센티브와 연계된다.[10] 또한 상담 이후에는 상담 이력을 남겨야 하는데 이력을 남기는 중에도 대기가 밀린다며 상급자의 질책을 받고 이력이 상세하지 않거나 뭔가 빠져 있으면 이것 또한 트집을 잡히는 건수가 된다.[8] 아파서도 안 된다. 스케줄 근무제이기 때문에 한 명이 빠지면 남은 인원이 그만큼 더 힘들고 응대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아파서 병원 가겠다고 하면 일단 반려된다. 상담이 끝나면 고객은 상담원에 대한 평가를 하고 최하점을 받으면 인센티브는 없다. 콜센터 상담원은 대부분 정규직이다. 그러나 임금은 최저시급 수준이다. 고용안정 측면에서 봐도 원청사와의 위탁계약이 종료되면 상담원도 자동으로 계약해지된다. 비정규직의 3대 요소를 저임금, 고용불안, 장시간 노동이라고 본다면 콜센터 정규직 상담원은 비정규직의 요건을 두루 충족하는 짝퉁 정규직이다.[9]
연극 [전화벨이 울린다]에서 수진은 사무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상담사 업무를 시작했다. 공장에서 평생 일을 하셨던 엄마는 공순이는 절대 되지 말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담사 업무는 공순이 못지 않은 극한직업이었다.
‘콜센터 상담업무는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단순업무’로 비용절감만이 유일한 가치라는 원청사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이런 열악한 근무여건과 저임금 현상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콜센터 상담 업무를 AI가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카카오 고객센터는 2018년 10월 음성이 아닌 채팅 중심으로 고객센터 운영방식을 바꾸었다.[12] 이렇게 바꾼 데에는 전화연결지연에 따른 고객불만이 많다는 점과 요즘 젊은 이용자들은 음성통화보다 문자 기반 커뮤니케이션을 선호한다는 점이 고려되었으나, 그 결과는 놀랍게도 상담사들의 이직율 저하와 직원만족도 향상이었다.
진상고객의 짜증 섞인 욕설 음성을 직접 듣지 않다 보니 상담사들의 스트레스가 줄었다. 동시에 3~4개 채팅창을 띄워 놓고 고객불만에 대응할 수 있다 보니 업무 효율도 높아졌고 고객 평균 대기 시간도 1분 이하로 줄었으며 상담 중 영상이나 인터넷 링크를 보낼 수 있어 고객 이해를 도울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이렇듯 음성통화를 채팅으로 변경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욕설뿐 아니라 빅데이터 기반으로 학습한 성희롱적인 표현까지 차단하면 상담사들의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상습적으로 폭언을 하는 고객의 발신번호를 블랙리스트화해서 별도 관리하는 방법도 있다. 실제로 한국코퍼레이션은 블랙리스트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면 상담경력이 긴 베테랑 상담사에게 연결한다.[13] 남아공의 로만손 피자는 고객의 어조와 감정을 파악하여 욕설이나 공격적인 대화를 보이면 지원팀에 도움을 요청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다.[17]
음성인식 기술을 이용하면 상담 후기를 남기는 작업도 간편해진다. 기존에는 상담사가 직접 상담내용을 요약해 타이핑해야 했지만, 이제는 자동으로 완성된 상담내용 요약을 눈으로 확인만 하고 필요한 부분만 수정하면 되는 AI컨택센터 솔루션이 출시되어 있다. 이러한 상담후기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되면 이를 빅데이터 분석하여 정교하게 고객 세그멘테이션 하고 고객에 대한 새로운 인사이트를 발굴하여 이를 새로운 상품기획 및 고객케어 전략으로 연결할 수도 있다.[16] 현대자동차는 고객센터에서 전달받은 소비자 의견을 반영하여 터널에 들어가면 자동으로 외부 공기가 실내로 유입되지 않도록 모드가 전환되고, 창문이 닫히는 기능을 신차에 적용했다. 고객센터에서 전달 받은 소비자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14]
이런 음성인식 기술과 문서관리 솔루션을 이용하면 고객의 말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고객에게 답변해야 할 내용을 추천해 줄 수도 있다. 상담사들이 1~2주 간격으로 보는 업무 매뉴얼 시험공부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더욱 정확한 내용을 고객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된다.
상담사들이 스트레스 심하게 받는 부분인 콜 모니터링과 피드백도 AI를 도입하면 스트레스를 완화시켜 줄 수 있다. 상담원들은 자신들의 통화내용이 누군가에게 감청 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불쾌하고 이에 대한 피드백을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야단 치듯이 상담원에게 전달하는 상사에게 시달리는 것도 큰 스트레스다. 고객 입장에서도 자기 통화내용이 감청 당하고 있다는 것이 기분 좋을 수 없다. 그런데 AI가 전체 콜을 모니터링하면서 SOP(표준운영절차)에서 벗어나는 내용이 있으면 이메일이나 채팅 등으로 상담원에게 전달한다면 쓸모 없는 감정소모를 피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이는 실시간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상담사와 고객 간 통화가 끝나기 전에 잘못을 바로잡을 수도 있다. 콜센터 입장에서도 잘못된 내용이 안내되거나 필수 내용을 누락하여 고객 클레임 등 재무적 손실이 발생하는 리스크를 예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15]
고객의 상담내용에 따라 AI가 이를 인간 상담사에게 연결할 지, 스스로 상담할 지를 판단하도록 한다. 단순문의는 AI가 스스로 처리하도록 한다. 대부분의 상담센터에는 단순 문의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다. 통신사의 경우, 청구서 발행 주기에 요금문의, 납부방법문의, 여행사의 경우 스케줄 변경/취소, 홈쇼핑의 경우 주문문의가 집중되는 것이 대표적 예다. 단순문의를 AI가 처리하도록 하면 고객은 상담사와의 연결을 기다릴 필요가 없어지고[18] 상담사는 단순문의에 반복적으로 응대해야 하는 피로를 줄여 보다 생산적인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 콜센터 입장에서도 고객과 상담사 모두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력 운영의 효율성도 도모할 수 있게 된다.
컨택센터 업무 중 고객에게 설문조사를 한다든가 불완전 판매 모니터링, 연체 알림, 서비스 변경 안내, 예약확정 해피콜 등 아웃바운드 업무 또한 상당히 중요한 업무이다. AI로 수행하면 많은 리소스를 절약할 수 있는 단답형 업무가 상당 부분 존재한다. AI를 이용해서 고객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고객 답변 및 변경 정보를 수신하여 업데이트함으로써 단순업무로 인한 상담사의 피로도를 어느 정도 경감시킬 수 있다.[19]
고객 상담 시 많은 부분이 고객 인증 하에 이루어진다. 상담 도중 이러한 인증 작업을 위해 상담원은 단순 질문을 반복하게 된다. 고객은 다이얼 패드를 누르고, 은행계좌 등을 이야기하다가 잘못 입력하면 다시 수정하는 등 번거롭고 짜증나는 일로 상담시간을 많이 할애해야 하는 프로세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목소리 인식 솔루션을 도입하게 되면 고객은 단지 상담원과 자연스러운 대화를 통해서 해당 고객에 대한 “인증”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된다. 이를 통해 인증에 소요되는 절차 및 시간이 간소화되고(약 15% 감소 효과) 단순반복적인 업무를 자동화함으로써 상담원의 업무 만족도가 증가하고, 이 밖에 타인 사칭을 방지하고 금융사고를 최소화하는 등 부가효과도 누릴 수 있게 된다.[20]
일부에선 콜센터에 AI를 도입하는 일이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뺏는 것 아니냐”고 우려할 지 모른다. 하지만 상담사에게 가중된 업무를 기계가 대신함으로써 상담사는 고객의 의견을 분석하여 개선안을 내거나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등 보다 부가가치 있는 다른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 보다폰의 경우 AI 어시스턴트를 상담원을 대체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고 기존 상담원을 AI 어시스턴트에게 고객의 니즈를 학습시키는 전문인력으로 활용해 보다 신뢰할 수 있는 자동화 서비스 시스템과 이를 위한 프로세스를 구축할 수 있었다.[21]
이제 상담원은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최저시급을 받는 단순 업무 담당이 아니라,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여 상품기획에 반영하게 하고, 고객 세그멘테이션을 정교하게 하여 Personalized Offer를 가능하게 하며 업무 프로세스를 효율적으로 개선하는 고부가가치 창출 업무를 담당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AI 어시스턴트를 교육시키는 인공지능 전문가로 재조명될 수도 있다. 예전 컨베이어벨트와 로봇팔이 산업혁명을 주도하게 되자, 사람들은 공장 노동자들이 직업을 잃고 도시빈민으로 추락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공장노동자들은 컨베이어벨트와 로봇팔, 기계를 수리하는 엔지니어로 재탄생했고 보다 높은 보수와 대체불가능한 인력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와 유사한 트랜스포메이션이 콜센터 상담원들에게도 일어나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 References
[1]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06770.html
[2] 감정노동 근로자의 감정노동 실태 연구보고서 (산업안전보건연구원, 2020)
[3] http://news.bizwatch.co.kr/article/mobile/2020/12/11/0014
[4]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46847.html
[5]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4641
[6]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4349499
[7]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46847.html
[8] https://pann.nate.com/talk/346250344
[9] https://m.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47528.html
[10] https://www.instiz.net/pt/4064746
[11]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06770.html
[12] https://news.joins.com/article/23298556
[13] https://brunch.co.kr/@jordan777/1691
[14] https://www.hyundai.com/content/dam/hyundai/kr/ko/data/company-report/2019/07/19/hmc-2019-sustainability-report-0719-ko-f.pdf
[15] https://www.hankyung.com/it/article/202103315476i
[16]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ibm_korea&logNo=221775595108
[17]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ibm_korea&logNo=222188096130&navType=tl
[18] https://www.hankyung.com/it/article/202103315476i
[19] http://arisys.co.kr/%EA%B8%B0%EC%88%A0%EC%86%8C%EC%8B%9D-ai%EB%A5%BC-%EC%9D%B4%EC%9A%A9%ED%95%9C-%EC%BB%A8%ED%83%9D%EC%84%BC%ED%84%B0-%EA%B5%AC%EC%84%B1-%EC%84%A0%ED%83%9D%EC%9D%B4-%EC%95%84%EB%8B%8C-%ED%95%84/
[20] http://arisys.co.kr/%ec%8b%a0%ea%b8%b0%ec%88%a0-%eb%8f%99%ed%96%a5-%ea%b3%a0%ea%b0%9d%ec%84%bc%ed%84%b0%ec%97%90%ec%84%9c%ec%9d%98-%ec%84%b1%eb%ac%b8-%ec%9d%b8%ec%8b%9d%ec%9d%84-%ed%86%b5%ed%95%9c-%ea%b3%a0%ea%b0%9d/
[21] https://m.blog.naver.com/ibm_korea/222025807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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