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과 직무 스킬 향상을 위한 가상 현실 기술들이 관련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성장에 힘입어 큰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가상 현실 기술은 그간 엔터테인먼트뿐 아니라 건설, 의료, 제조, 유통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는데요. 매터포트(Matterport), 오토데스크(Autodesk), 유니티(Unity), 메타(Meta) 등 글로벌 기업들은 가상 현실 기술 연구, 플랫폼 운영 및 기기 판매 등을 통해 시장을 리드하고 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엔터테인먼트 분야가 아닌 생산성 향상을 위해 기업들이 어떻게 가상 현실 기술을 활용하고 있으며 극복해야 할 문제점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상 현실(VR, Virtual Reality)은 평면적인 디스플레이에 표현되는 2차원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사용자가 3차원 공간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입니다. 사용자는 헤드셋이나 특수 안경 등을 착용한 상태에서 VR 전용으로 제작된 콘텐츠를 시청함으로써 가상 현실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실제 현실에서 체험이 어렵거나 구현이 불가능한 상황을 사용자는 VR 콘텐츠에서 효율적으로 겪어볼 수 있죠.
가상 현실 개념과 혼동하기 쉬운 증강 현실(AR, Augmented Reality)은 가상 현실의 한 종류로 실제 현실에 가상의 정보를 더해 사용자가 실제 현실을 더 효율적으로 체험하게 만드는 기술입니다. 특정 공간이나 QR 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실존하지 않는 건물이나 물체가 스마트폰 화면에는 보이는 서비스가 대표적인 증강 현실의 사례입니다. 따라서 증강 현실은 가상 현실의 단순한 버전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번 글에서 다루는 가상 현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가상 현실 콘텐츠는 몰입의 강도에 따라 비몰입 VR, 반몰입 VR, 몰입 VR로 나뉩니다.
첫째, '비몰입 VR 콘텐츠'는 몰입의 정도가 가장 약한 수준의 가상 현실로, 구글맵 등 지도 서비스에서 흔히 보게 되는 스트리트 뷰나 3차원 어셋(asset)을 활용해 만든 2차원 비디오 게임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별도의 VR 기기가 없더라도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에서 가상 현실 콘텐츠를 재생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죠. 사용자는 비몰입 VR 콘텐츠를 통해 자신이 특정 공간에 있다는 설정을 능동적으로 생각해야 하므로 사용자에 따라 가상 현실 경험의 깊이가 다를 수 있습니다.
둘째, '반몰입 VR 콘텐츠'는 전용 기기의 도움을 받지 않는 비몰입 VR 콘텐츠와 달리 조이스틱이나 고해상도 디스플레이와 같은 추가적인 하드웨어를 필요로 합니다. 사용자는 이런 추가 하드웨어의 도움을 받아 VR 콘텐츠를 보다 입체적으로 체험하게 되며 몰입도를 높일 수 있게 되죠. 극장에서 3D 영화를 볼 때 쓰게 되는 안경, 자동차 경주 온라인 게임을 할 때 사용하는 운전대 조이스틱 등이 추가 하드웨어의 예시인데요. 사용자는 이러한 보조 수단을 통해 VR 콘텐츠와 손쉽게 상호 작용하게 됩니다. 비몰입 VR 콘텐츠에서 사용자가 능동적인 생각을 하기 위한 수고를 들여야 했다면, 반몰입 VR 콘텐츠에서는 상대적으로 그 수고를 덜 수 있게 됩니다.
끝으로 '몰입 VR 콘텐츠'는 가장 몰입도가 높은 수준의 가상 현실을 제공합니다. 몰입 VR 콘텐츠를 체험하기 위해 사용자는 안면부에 HMD(Head Mounted Display)를 쓰게 됩니다. 사용자는 HMD를 통해 실제 현실에 대한 인지가 감소(혹은 차단)된 채, 시각, 청각 등 다양한 정보를 접하게 됩니다. 따라서 몰입도가 극대화 되고 오롯이 콘텐츠에 집중할 수 있죠. 콘텐츠에 따라서는 HMD뿐 아니라 몸의 움직임을 3차원으로 감지하는 센서와 진동을 주는 햅틱이 달린 조이스틱도 쓸 수 있어 가상 환경과 다양하고 직관적인 상호 작용을 하게 됩니다.
건설과 부동산 분야는 가상 현실 기술이 활발하게 쓰이는 대표적인 분야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두고 있는 매터포트(Matterport)는 건물이나 주택의 내부 공간을 가상 현실로 만드는 VR 솔루션을 제공하는데요[1]. 부동산 업체들은 이를 통해 잠재 고객들이 수고스럽게 발품을 팔지 않더라도 온라인으로 입체감 있는 건물 투어를 할 수 있도록 합니다. 당연히 고객 입장에서 평면적인 이미지만 제공하는 부동산 업체보다 가상 현실 콘텐츠를 제공하는 부동산 업체에 상대적으로 큰 호감을 갖게 되며 이는 최종 계약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죠. 매터포트의 솔루션을 활용해 건축가들은 건물 구조를 3차원으로 표현하고 관광업체들도 고객들이 미리 유명 관광지를 체험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특히 매터포트는 스마트폰으로 공간을 찍으면 VR 콘텐츠로 전환할 수 있는 모바일 앱도 제공해 가상 현실 콘텐츠를 손쉽게 제작하고 싶은 사업자들을 돕고 있습니다.
자동차 회사 포드(Ford)의 가상 현실 사례도 흥미롭습니다. 포드의 파이브 랩(FIVE Lab, Ford Immersive Vehicle Environment Lab)은 VR 기술을 활용해 차량 디자이너가 엔지니어와 보다 정확하고 심플하게 협업할 수 있도록 하는데요[2]. 디자이너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단순히 2차원 도면으로 나타내는 대신 가상 현실로 구현함으로써 엔지니어가 디자이너의 아이디어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엔지니어는 가상 현실에서 구현된 차량 내외부를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고 프로토타입을 만들 때 어떤 공학적인 요소가 고려되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죠. 이는 2차원 도면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웠던 가상 현실만의 장점입니다. 또한 엔지니어는 가상 현실에서 드라이버가 프로토타입 차량과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 입체적으로 살펴보게 되어 수정이 필요한 부분, 잠재적 위험 요소, 운전자를 위한 추가 편의 사항 등을 관찰하고 고민하게 됩니다.
가상 현실 기술을 의료 분야에 적극 도입하고 있는 XRHealth도 생산성 향상에 가상 현실 기술이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기업 사례입니다[3]. XRHealth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XR이라는 개념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VR은 가상 현실을 뜻하며 AR은 증강 현실을 가리킵니다. XR은 이 두 가지 개념을 결합한 것으로 eXtended Reality의 약자입니다. 가상 현실과 증강 현실을 합쳐 사용자의 다양한 니즈에 따라 적절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죠. XRHealth는 이런 XR의 장점을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 경쟁, 리워드 등 게임 요소를 게임이 아닌 다른 분야에 응용하는 전략) 원리와 접목해 환자들이 물리 치료를 재미있게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데요. XR 기술로 물리 치료에 대한 몰입도를 높일 뿐 아니라 치료의 정확도를 높이는 데도 큰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또한 주의력 향상, 문제 해결 능력 개선 등의 치료에도 XR 기술이 쓰이는데, 기존의 심리 치료법과 더불어 가상 현실 환경을 제공해 환자의 정신 상태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원격 진료, 통증 개선 등에도 XR 기술이 쓰이고 있죠.
이처럼 가상 현실 기술은 생산성 관점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아직 풀어야 할 과제들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가상 현실 기술은 가상 공간의 자율성, 가상 공간과 사용자의 상호 작용, 사용자 몰입 등 3가지 요인으로 특징지을 수 있습니다[4]. 이 3가지 요인들이 조화롭게 작용해야 가상 현실 사용자의 사용 편의성을 높이고 결과적으로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죠. 특히 사용자의 몰입 요인은 사용자가 가상 현실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얼마나 잘 사용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입니다.
가상 현실 콘텐츠에 대한 몰입은 사용자의 시각 구조와 가상 현실 세계를 연결하는 기기 즉 HMD의 구조를 동시에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5]. 인간은 두 개의 눈으로 사물을 인식하는데요. 각각의 눈이 3차원 공간에 있는 사물을 개별적으로 인식하고 그 시각 정보가 한데 모여 거리감은 물론 공간감과 깊이감을 느끼게 됩니다. 한쪽 눈을 감고 사물을 바라보면 두 눈을 사용했을 때와 달리 밋밋하고 거리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죠.
그런데 HMD에서 사용자는 3차원 공간 대신 평평한 디스플레이를 통해 가상 현실 속 사물을 보게 됩니다. 이때 가상 현실 속 사물은 멀리 있는 것처럼 인식되어야 하는데 문제는 사물이 눈앞에 바로 위치한 HMD 디스플레이에 맺힌 시각 정보라는 점입니다. 즉 실제 거리를 갖고 있는 현실 세계 속 사물을 사용자의 눈이 인식하는 것이 아닌, HMD가 만들어내는 가상 세계 속 사물을 사용자의 눈이 바라보게 되는 거죠. 이 과정에서 실제 시각 정보(HMD 디스플레이의 신호)와 인지된 시각 정보(가상 현실 속 이미지)가 일치하지 않아 일부 사용자들은 어지럼증, 구토감 등의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바로 'VR 멀미'라고 하는 증상인데요. 참고로 이러한 불편함은 비단 가상 현실 콘텐츠뿐 아니라 1인칭 슈팅 게임(FPS, First Person Shooting) 등의 온라인 콘텐츠 사용자들도 종종 겪게 됩니다.
이 외에도 아직 유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HMD 기기의 제한된 이동성, 킬러 콘텐츠의 부재, 호환성의 제약, 비싼 가격 등이 가상 현실 기술이 풀어야 할 숙제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사업적인 측면뿐 아니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지속적인 연구와 과감한 투자를 통해 가상 현실 기술의 가능성을 극대화하고 무엇보다 사용자의 불편함을 개선한다면 향후 보다 큰 시장 기회가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참고자료
[1] https://matterport.com
[2] How Ford is using Augmentative & Virtual Reality.(https://blog.relaycars.com/ford-augmentative-virtual-reality)
[3] https://www.xr.health
[4] El Jamiy, F., & Marsh, R. (2019). Survey on depth perception in head mounted displays: distance estimation in virtual reality, augmented reality, and mixed reality. IET Image Processing, 13(5), 707-712.
[5] Maruhn, P., Schneider, S., & Bengler, K. (2019). Measuring egocentric distance perception in virtual reality: Influence of methodologies, locomotion and translation gains. PloS one, 14(10), e02246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