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SCM이 코로나로 다시 주목받게 된 이유를 알아봤습니다. 코로나 이전에 세계화라는 큰 물결이 있었고, 그 세계화를 통해 세상이 SCM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금방 싫증을 내죠. 10년 넘게 세계화에 SCM을 최적화하자 조금씩 관심이 멀어집니다. 그러다 코로나가 발발했습니다. 코로나는 물리적 공급망을 강제로 재구성하게 만들었죠. 이는 공급망 프로세스의 정비로 이어졌고, 다시 시스템 개선으로 연결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세계화가 원인이든, 코로나가 원인이든 SCM의 근본적인 최적화의 방향은 동일합니다. 효율을 극대화해 비용을 줄이고 재고를 감축하는 방향은 같죠. 그런데 왜 세계화가 시작되자 그때까지 언급조차 없던 SCM이 나타나고 강조되었던 걸까요? 또, 코로나가 발발하자 우리는 왜 다시 SCM에 주목하게 된 걸까요? 그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최초의 큰 변화였던 세계화가 왜 대세가 되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업가는 역사 이래 똑같은 것을 찾았습니다. 값싼 노동력과 넓은 시장이죠. 그 열망이 동양과 서양을 잇는 ‘실크로드’를 만들었고, 제국주의도 나타나게 했습니다. 하지만 낙타와 범선이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극복해 물자와 정보를 옮기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콜럼버스가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을 연결한 항로는 두 달이나 걸리는 길이었죠. 이후로 기술이 발전해 배의 성능이 좋아지고 바람이라는 자연의 힘에 의지하지 않아도 항해가 가능해졌지만 그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지는 않았습니다. 큰 변화가 온 것은 비행기 발명 이후였죠. 그리고 더 혁신적인 변화는 그 이후입니다. 비즈니스는 물자와 정보, 돈을 옮겨야 합니다. 처음에는 이 세 가지 모두를 사람이 직접 전달했습니다.
고객이 우리 회사 제품이 몇 개 필요하다는 정보를 주면, 우리 회사는 그 수량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를 공급업체에 주문합니다. 가장 먼저 정보가 고객에서 공급업체의 방향으로 전달됩니다. 그다음은 실제 물자의 이동이 있을 것입니다. 공급업체가 주문받은 자재를 우리 회사에 가져다주겠죠. 우리 회사는 여러 재료와 노동을 더해 제품을 만들어 내고, 그 제품을 고객에게 가져다줍니다. 물자의 움직임이 만들어졌습니다. 약속된 물자의 이동이 끝나면 마지막으로 돈이 움직이죠. 돈도 정보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고객이 우리에게 제품 대금을 주고, 우리 회사는 공급업체에 자재 대금을 주겠죠. 과거에는 세 가지 모두 사람이 이동시켰습니다. 그래서 세 가지의 이동 시간은 공간적 거리에 비례했고, 이동 속도도 정보, 물자, 돈 모두 비슷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깁니다. 통신이 발전하면서 정보와 돈은 사람이 직접 이동시키지 않아도 되게 됩니다. 이런 현상은 인터넷이 나타나면서 더욱 심화됩니다. 이제 정보와 돈의 이동에는 공간적 제약이 사실상 사라지게 됩니다.
기술은 더 발달했고 정보와 돈은 거의 실시간으로 상호 간에 쌍방향으로 전달됩니다. 물자도 비행기나 빨라진 철도, 자동차 덕분에 이동 시간을 줄일 수 있었고 물자가 실시간으로 이동할 수는 없었지만, 정보가 이동하 는데는 제약이 없었기 때문에 현재 물자의 위치나 움직임을 상호 공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변화가 기업의 활발한 세계화를 초래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당연해 보이지만 막상 설명해 보라고 하면 쉽지 않습니다.
정보와 돈, 물자의 이동이 전부 사람에 의해 이뤄지는 상태에서 도시락을 만들어 판다면 우리가 주문을 받을 수 있는 범위는 마을 수준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식재료를 구입하는 것도 동네 시장에서 주로 이루어지겠죠. 만약 다른 마을에까지 도시락을 판매한다면 다른 마을에 사람을 보내 주문을 받아야 할 것이고, 그 사람이 돌아오기도 전에 식사 시간이 지나버리겠죠. 식자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싸고 좋은 고등어가 걸어서 하루 거리에 있는 바다에서 나왔다고 해도 그걸 사러 갈 수는 없습니다. 설사 간다고 해도 그 정보는 이미 하루가 지난 정보이기 때문에 도착했을 때 좋은 고등어를 사 올 수 있을 가능성은 높지 않죠.
도시락이 시간이 지나면 상하는 음식이라서 그럴까요? 이런 현상은 전자제품도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대학을 입학했을 무렵, 컴퓨터의 성능이 급속도로 향상되기 시작했습니다. 최신형 모델이 286이었다가, 해가 넘어가기도 전에 386이 나왔고 다시 486, 펜티엄으로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지금이야 스마트폰이 1년 주기로 플래그십 모델을 출시하니 대단한 일도 아니었지만, 당시만 해도 TV와 냉장고로 대표되던 전자제품은 한 번 사면 10년은 사용해야 하는 물건이었습니다. 새로 나온 컴퓨터도 전자제품의 범주에 들어 있었으니 제조사는 비슷한 생각을 했겠지요. 그래서 미국과 유럽에서 주문받은 컴퓨터를 다른 전자제품을 운송하던 방식대로 배에 선적해서 보냅니다. 도착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게는 6개월이 걸렸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실을 때 최신형이었던 컴퓨터가 항구에 도착할 때는 구형 모델이 되어 있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예로 든 사례는 너무나 명확하죠. 기술의 발전이 너무나 빨랐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 속도가 더 빨라졌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스마트폰이죠. 전자제품도 도시락처럼 유통기한이 생긴 셈입니다. 이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세계화와 함께 등장한 글로벌 기업들은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합니다. 인터넷과 모바일의 발전으로 정보와 돈의 흐름은 실시간이 되었습니다. 물자는 아무리 빠르게 옮긴다고 해도 실시간 이동은 불가능하죠. 하지만 당일 배송, 새벽 배송은 가능해졌습니다. 방법은 두 가지뿐입니다. 커버할 공간을 줄이거나, 이동 수단의 속도를 높이는 것이죠. 도시락 사례처럼 하나의 마을이나 도시를 대상으로 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그렇게 좁은 곳에서 팔게 되면 사업이 안 되겠죠. 그래서 배 대신 비행기로 실어 보냅니다. 그리고 공장을 판매하는 곳과 가까운 곳에 만듭니다. 두 가지가 합쳐지면 속도는 더 빨라지겠죠. 그렇지만 공급망은 길어지고 복잡해집니다. 그 결과, 관리(Management)가 필요해집니다. SCM의 첫 번째 전성시대가 시작된 거죠.
코로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물자(제품이나 서비스)까지 실시간으로 바뀌도록 강요했습니다. 멀지 않은 미래에는 정보, 돈, 물자가 모두 디지털화되고 쌍방향으로 실시간 전달될 겁니다.
실제로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산업들이 이미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이고 익숙한 것이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 영역입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필름 다발이 비디오테이프로 바뀌었고, CD로 전환되었다가, 이름도 복잡했던 광디스크, 블루레이 등을 잠시 거쳐 지금은 스트리밍으로 헤쳐 모였죠.
물질이었던 필름 다발, 비디오테이프, CD가 완전 디지털화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공급망도 바뀌어야 했습니다. 비디오테이프, CD 등을 제조하는 곳은 사라졌고, 동네마다 몇 개씩 있던 대여점도 역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모든 것을 몇 개의 OTT 플랫폼이 장악했습니다.
여기에서 그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 X를 창업하여 인류의 화성 여행을 준비하고 있죠. 안타깝게도 우주선 스타십은 지난 20일(현지 시각) 성공적으로 이륙했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공중에서 폭발했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처음 이 계획을 발표한 것이 언제였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의 최종 목표는 화성에 인류를 보내 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화성행 티켓을 팔았고, 신기하게 완판되었습니다. 그 계획에서 제가 충격을 받은 항목이 하나 있습니다. 그 티켓이 편도였다는 겁니다. 돌아올 수도 없는 화성행 티켓을 팔려고 한 것도 대단하지만 그것을 산 사람들도 대단합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죠. 지금 기술로는 화성에서 지구로 출발할 우주선이나 연료를 수급할 수 없으니까요. 화성에서 우주선을 제조할 공급망이 구축되지 않는 한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그게 가능은 할까요? 마지막 물질 부분이 디지털화되면 됩니다. 그리고 3D 프린터가 더해지면 되겠죠. 지구에서 정보를 보내고 그 정보를 기반으로 화성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3D 프린팅이 된다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또 공급망을 크게 바꿀 큰 물결이 이미 와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출처 : 현장 컨설턴트가 알려주는 공급망 관리(SCM) 성공 전략 (주호재 저)
+ 코로나19로 다시 주목받는 SCM(Supply Chain Management, 공급망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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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급망 시스템의 본질 - 통제와 유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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