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 시스템의 본질인 통제와 유도에 대해서 세 차례에 걸쳐 이야기를 했네요. 다시 말머리를 돌려서 SCM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의도치 않게 오늘도 내용이 좀 길어질 것 같습니다.
+ 공급망 시스템의 본질 - 통제와 유도 (1)
+ 공급망 시스템의 본질 - 통제와 유도 (2)
+ 큰 비용을 들여서 회사 시스템을 구축하는 이유 - 통제와 유도(3)
SCM의 본질이 ‘공급망을 구성하는 것과 이를 최적화하는 것’이라면 SCM을 잘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비교적 명확합니다. 우리 회사에 맞는 적절한 공급업체와 고객을 포함한 공급망을 잘 구성하고, 그 공급망을 최적화하는 활동을 계속하면 됩니다. 문제는 이 공급망 최적화의 방향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겁니다. 때로는 이 방향성이 크게 바뀔 때 공급망이 재구성되기도 합니다. 10여 년 전, 영원할 것만 같았던 SCM이 한동안 무대에서 사라진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SCM 관련 저의 첫 책인 ‘글로벌 비즈니스 SCM으로 정복하다’에서 뭐라고 했겠습니까? 저는 다소 경솔한 편입니다. 책 좀 팔아보려고 ‘이건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다’, ‘모든 회사는 SCM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SCM을 고려하지 않은 회사는 어려움에 빠질 것이고 망할 수도 있다’ 등. 별별 말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10년 정도 주목을 받던 SCM은 갑자기 무대에서 사라졌었고, 코로나19로 스포트라이트에서 사라졌던 SCM이 다시 주목 받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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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미국 중심의 공급망 구성 천명’
‘바이든, 전기차 공급망 지원’
‘반도체 공급망 허브 조성’
‘전 세계 선원 백신 접종률 낮아 공급망 혼란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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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망 관련 신문기사 제목입니다. 2010년 중반이 지나면서 미디어에서 자주 다뤄지지 않던 공급망과 SCM이 코로나19가 발발한 이후 빈번하게 언급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에서 조금 멀어져 있었던 SCM이 코로나 이후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겁니다. 저는 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골드 엘리엇이 ‘더골(The Goal)’이라는 책을 출판한 것이 1984년이었습니다. 책의 핵심이 된 제약이론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지만, 현실에서의 움직임은 한동안 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90년대가 되면서 제약이론을 기반으로 한 솔루션(i2, Adexa 등)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본격적인 붐이 일어난 것은 2000년이 지나서였습니다. 이때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어느 날, 조용하던 밥 공급망에 ‘노란 머리 밥’이 나타납니다. 가슴에 칠면조 한 마리를 안고 있었죠. 육류로는 닭과 토끼만 존재하던 공급망에 칠면조가 더해집니다. 마을에 한동안 머물던 밥은 동네에서 양념을 처갓집에서 해왔다(젊은 분들은 처갓집 양념 통닭을 모르실 수도…)는 기름에 바싹 튀긴 닭을 맛보게 됩니다. 천상의 맛이었죠. 멀리 있는 가족이 생각난 밥은 그것을 가슴에 안고 다시 바다를 건너 갑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마을에서는 칠면조가 먹고 싶어졌고, 멀리 있는 밥은 처가에서 양념한 닭이 먹고 싶어졌습니다. ‘노란머리 밥’을 포함한 공급망이 만들어졌죠. ‘노란머리 밥’이 오기 전까지 공급망의 변화는 한정적이었습니다. 단순히 참여자가 많아져서 공급망의 복잡도가 선형적으로 늘어나는 정도였죠. 그런데 ‘밥’의 등장은 구조적인 변경을 필요로 했습니다. 공급망에 ‘밥’이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시점이 2000년 즈음이었고, 그 현상을 ‘세계화’ 또는 ‘글로벌화’라고 불렀습니다.
세계화가 왜 SCM에 큰 변화를 초래했을까요? 공급망관리의 본질은 공급망을 구성하고 구성된 공급망을 최적화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세계화로 공급망의 구조와 구성이 크게 변하게 됩니다. 세계화 이전에는 고객도 국내에 있었고, 공장도 국내에 있었으며, 부품 공급업체도 대부분 국내에 위치했습니다. 세계화가 본격화된 이후에는 전 세계의 고객을 대상으로 판매해야 하고, 이에 따라 공장도 중국, 동남아, 브라질 등 전 세계에 두게 되었습니다. 공장이 세계 곳곳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부품 공급도 해외 조달 위주가 되었겠죠.
아마도 세계화로 인해 공급망이 처음 구성될 때는 거의 모든 회사가 그림과 같은 형태가 될 겁니다. 그때그때 필요한 자재를 조달하고 제품을 요청하는 고객은 어디라도 받아들이다 보면 그림보다 훨씬 더 혼란스러운 상황이 되기도 하죠. 단기적으로는 큰 무리가 없겠지만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고 규모가 더 커지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물류의 이동 거리가 멀겠죠. 그에 따라 비용이 커질 것이고, 나라마다 법과 제도가 다르기 때문에 법적인 문제도 발생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재가 제때 조달되지 못해서 생산 라인이 서는 경우도 발생할 것이고, 고객에게 제때 제품을 배달하지 못하게 되기도 할 겁니다.
그래서 공급망의 정비가 필요해질 것이고, 우리 회사를 역할별로 나눠 각 지역에 두는 형태로 공급망을 정비해 나가게 됩니다. 대략적으로 그림과 같은 형태가 됩니다. 본사에서는 전체적인 수요를 집계하여 수요 계획을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공급계획을 수립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공급망 십자가의 중심 역할을 하는 것이죠. 각 지역에 만든 생산법인은 가까운 곳에 공급업체를 두고 본사에서 할당한 공급계획에 맞춰 제품을 생산하게 됩니다. 생산된 제품을 본사의 계획에 따라 각 판매 법인으로 보내고 판매 법인은 각 지역의 고객에게 제품을 배송하게 됩니다. 이것이 1차적인 공급망 최적화가 됩니다. 세계화의 물결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공급망이 구성되었고, 구성된 공급망을 세계화의 방향성에 맞게 최적화하는 SCM의 두 가지 활동(구성 최적화)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처음 SCM이 유행했을 때 SCM이 거론되면 거의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이 ‘재고 감축’과 ‘비용 절감’이었습니다. 기업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돈을 많이 벌어서 식구들을 잘 먹이는 것이니 이 목표를 가장 잘 달성하기 위해서는 재고와 비용을 줄여야 했던 것이죠.
공급망 십자가와 원가 막대에 빗대어 봐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수요와 공급의 각 단계에서 계획을 잘 수립해서 고객의 수요와 최종 공급 사이의 차이를 줄이면 재고가 줄어듭니다. 시간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수요만큼 만들어서 다 팔면 수요와 공급의 수가 동일해지고 재고는 제로가 되겠죠. 그다음은 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최적화해 원가의 비중을 줄이는 것이 되겠죠. 원가를 줄여서 남은 이익을 다시 투자를 하면 제품이 좋아질 것이고 제품이 좋아지면 판매 가격을 올릴 수도 있겠죠. 이 과정이 계속 반복되면 경쟁자와의 차이는 더욱더 벌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보면 세계화는 ‘재고 감축’과 ‘비용 절감’이라는 방향성은 국내 혹은 한 지역에서만 공급망을 구성할 때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세계화가 되면서 각 지역에 생산과 판매를 할 수 있는 거점을 마련하고 나면 다시 ‘재고 감축’과 ‘비용 절감’이라는 방향으로 매진하면 됩니다. 어찌 보면 그래서 처음 SCM이 주목을 받고 어느 정도 최적화가 이뤄진 이후에는 한동안 SCM이 주목받지 못했을 수도 있죠. 코로나19라는 팬데믹(pandemic)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계속 그랬을 겁니다.
환경에 완벽하게 최적화하면 영원불변의 절대 강자가 될 수 있을까요?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큰 환경의 변화가 없다면 영원한 강자로 남을 겁니다. 하지만 환경은 언제든 큰 변화를 맞게 됩니다. 그 순간이 되면 주어진 환경에 너무 최적화된 개체는 가장 먼저 사라집니다. 공룡이 그랬던 것처럼. 생물의 진화는 어떤 방향을 향할까요? 저는 2가지 방향이라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 것입니다. 육지에 올라온 종들은 육지에 맞게 변화했고, 바다에 남은 종들은 바다에 맞게 진화해야 했습니다. 두 번째는, 급격한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죠. 계속 육지에 살더라도 수만 년 전의 기후와 지금의 기후가 같지는 않죠. 갑자기 추워진 시간도 있었고 뜨거웠던 시간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살아남지 못했겠죠.
다시 SCM의 본질로 돌아가 보죠. 세계화라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물리적 공급망, 프로세스, 컴퓨터 시스템을 포함한 SCM 체계를 재구성하도록 합니다. 그동안 제한된 지역에서 재료를 공급받아 물건을 만들어 제한된 지역의 고객에게 팔던 공급망을 완전히 재구성하게 만든 것이죠.
태초의 밥 공급망부터 리처드 1세의 십자군을 거쳐, 도시락 회사와 명품 가방 구매를 거치며 SCM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이제 환경과 기술 등의 외부 조건에 의해 변하는 SCM의 모습을 걷어내고, 변하지 않는 SCM의 본질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먼저 SCM 체계를 좀 더 큰 의미로 정의하겠습니다. SCM 체계에는 무엇보다 먼저 실제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요청하는 고객과 그 요구에 대응할 공급망이 물리적으로 있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지지만 사업이 커지면서 고객을 발굴하고, 어떤 부품 공급업체를 선정할지 등의 의지가 들어갈 것입니다. 그래서 고객-우리 회사-부품 공급업체로 이어지는 ‘물리적 공급망’이 만들어집니다.
물리적인 공급망을 만들고 나서, 혹은 동시에 그 공급망이 최대의 성과를 올리게 만들 프로세스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공급망 프로세스’라 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공급망 프로세스를 ‘컴퓨터 시스템’으로 만들었죠.
위 그림과 같이 물리적 공급망, 공급망 프로세스, 컴퓨터 시스템을 통틀어 ‘SCM 체계’라 부르기로 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회사에서 SCM 체계를 구축한다고 하면 이 세 가지를 만든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물론 물리적 공급망은 사업을 처음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미 만들어져 있을 것이기 때문에 보통은 공급망 프로세스를 잘 정비하고, 이를 기반으로 컴퓨터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SCM 체계는 한 번 만들고 나면 끝이 날까요? 시장 환경과 고객의 요구는 계속 변하고 있고, 기술의 발전도 정신을 못 차릴 정도입니다. 거기에 더해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도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이는 곧 SCM을 아무리 완벽하게 구축해도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황에 따라 SCM 체계를 다시 구성하고 재빠르게 최적화하는 일을 몇 번이라도 반복해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저에게 미래의 SCM은 어떻게 변할지 예측해 달라고 하십니다. 그럴 때마다 제 대답은 똑같습니다.
“저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환경과 기술의 변화에 따라 SCM 체계를 다시 구성하고 재빠르게 최적화하는 작업을 빠르게 수행하지 못하는 기업은 도태하게 될 것입니다. 승부는 SCM 체계를 새롭게 구성하고 최적화하는 속도에서 갈립니다.”
출처 : 현장 컨설턴트가 알려주는 공급망 관리(SCM) 성공 전략 (주호재 저)
+ 코로나19로 다시 주목받는 SCM(Supply Chain Management, 공급망관리)
+ 공급망은 있었지만 공급망 관리는 없었다
+ 십자가와 공급망 관리
+ 마법사는 SCM이 필요 없다
+ 공급망 관리(SCM: Supply Chain Management)의 기본 원리
+ 공급망 관리(SCM: Supply Chain Management)의 본질
+ 공급망 관리(SCM)의 여러 얼굴
+ SCM 프로세스란?
+ 공급망 시스템의 본질 - 통제와 유도 (1)
+ 공급망 시스템의 본질 - 통제와 유도 (2)
+ 큰 비용을 들여서 회사 시스템을 구축하는 이유 - 통제와 유도(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