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SCM 프로세스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프로세스는 항상 입력과 출력을 고려해 정의되었지요. 그리고 아무리 프로세스가 정확하고 자세하게 정의되어 있더라도 사람들이 정의된 대로 프로세스를 따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도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입력, 프로세스, 출력이라는 프로세스의 기본 3요소 외에 사람들이 프로세스를 지키게 만들 통제와 유도책이 필요했지요. 이번 글에서는 통제와 유도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옛날이야기를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이 나무 기둥을 북문 앞으로 옮기는 자에게 금전 10개(十金)를 주겠다.”
도성 남문 앞에 커다란 방이 붙었습니다. 그 옆에는 방의 내용처럼 긴 나무 기중이 하나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금전 10개라는 보상에 비해, 해야 할 일은 너무 쉬웠기 때문이죠. 행여나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도 했습니다. 하루가 지나도 나무 기둥은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상금이 5배가 되었습니다. 나무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렸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섣불리 나무를 옮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벌을 받을까 두려워했죠. 그때 건장한 한 남자가 나섰습니다. 수많은 눈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쫓습니다. 잠시 망설이다 나무를 번쩍 들고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까 궁금해 그의 뒤를 졸졸 따라 갑니다. 나무 기둥이 얼마 지나지 않아 북문에 도착했고 고위 관리로 보이는 사람이 아무런 조건 없이 금전 10개를 그 남자에게 건넸습니다.
이야기 주인공은 나무를 옮긴 사람이 아니라, 관리인 상앙(商鞅)입니다. 고대 중국 진나라의 명재상이었고 진시황제가 최초로 중국을 통일할 수 있도록 기틀을 만든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상앙은 법치주의를 표방하고 이를 바탕으로 부국강병책을 적극 추진하여 당시 진나라 왕이었던 효공(孝公)의 신임을 받았습니다. 상앙은 법치주의자답게 법의 제정이나 시행에 매우 신중한 면모를 보였는데, 이 이야기도 그런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후대에 이목지신((移木之信)이라는 고사로 알려지게 되죠. 한자 그대로 풀면 ‘나무 옮기기로 믿음을 주다’입니다.
어렵게 왕의 신임을 받고, 권력을 잡은 상앙은 자신의 정치철학인 법치주의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았죠. 법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백성들이 나라를 믿고 잘 따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고 사람들이 그 법을 우습게 알거나 잘 모르면 아무 소용이 없죠. 그래서 어떻게 하면 백성들의 관심을 끌어모을 수 있을까 고민했고 그 결과가 이목지신(移木之信)이었습니다.
이목지신(移木之信) 이벤트 후에 진짜 법령을 발표합니다. 이벤트로 나라가 약속은 틀림없이 지킨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그 법에 대해서는 상당한 거부 반응을 보였습니다. 법조문 내용이 너무 엄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시행 일 년 동안에 새 법령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시범 케이스’죠.
마침 그때 태자가 법을 어깁니다. 상앙은 속으로 ‘찬스’ 했겠죠. 그리고 법에 따라 태자의 태부(太傅)를 참형에 처하고 태사(太師)는 칼로 이마를 째어 글자를 새깁니다. 백성들은 겁이 덜컥 났겠죠. 태자의 최측근과 스승까지 엄하게 벌을 주니까요. 십 년이 지나자 백성들은 법에 익숙해져 오히려 만족스러워했고, 태평성대의 시그니처인 ‘남의 물건이 길바닥에 떨어져 있어도 줍지 않았으며, 도적들이 자취를 감추었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강력한 제도의 힘으로 백성들의 살림살이도 훨씬 좋아졌습니다.
정보 시스템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제가 내린 시스템의 본질은 딱 두 가지입니다. ‘통제와 유도’입니다. 시스템은 통제해서 틀 안에서 일하게 하거나, 인센티브를 줘서 시스템을 설계한 사람이 원하는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통제는 어기면 벌이나 불이익을 받게 되고, 유도를 따르면 인센티브나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상앙의 고사에서 법령이 통제에 해당되고 이를 어긴 태자는 벌을 받았죠. 반면 나무 기둥을 옮기는 것은 유도에 해당되고 그 일을 수행한 남자는 50개의 금을 상으로 받습니다.
시스템에서는 통제와 유도가 어떻게 적용될까요? 출장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처음 사업을 시작하면 출장 프로세스라는 것이 없습니다. 일이 있으면 그냥 가고, 소요된 비용은 사후에 정산을 할 겁니다. 그러다 사업 규모가 커지고 직원이 많아지면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겠죠. 프로세스를 만들어 통제를 해야 합니다. 출장을 허가하는 통제가 만들어지고, 영수증이 없으면 처리를 해주지 않는다는 통제도 만들어지겠죠. 이런 업무 규칙들이 반영된 출장 프로세스라는 통제가 만들어집니다. 정보 시스템이 있는 회사는 시스템에 반영이 되겠지요. 그런데 운영을 하다 보니, 계획성 없는 출장이 너무 많은 겁니다. 출장 처리도 사후가 압도적으로 많아요. 삐딱하게 보기 시작하니 불필요한 출장도 많아 보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유도책을 만듭니다. 꼭 필요한 출장을 막을 수는 없으니 미리 계획을 해서 사전에 출장을 시스템에 올리면 출장비 중 일부를 미리 지급합니다. 그리고 결재도 직속 상사만 승인하면 되게 합니다. 반면 사후에 처리를 할 경우에는 결재를 하늘 높이 올려버립니다. 직원들이 어떻게 할까요? 직장 생활 하루라도 해보셨으면 답은 정해져 있죠. 이것이 유도입니다. 통제와 유도는 고정되어 있는 건 아닙니다. 상황에 따라 통제였던 것이 유도로 바뀌기도 하고, 유도를 하다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통제로 바꾸기도 합니다. 출장 프로세스로 예를 들었지만 ‘통제와 유도’의 콘셉트는 SCM 프로세스 전체에 녹아 있습니다. 공급망 전체를 어떻게 통제하고 유도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SCM 일 테니까요.
상앙은 그 뒤로 어떻게 되었을까요? 오래오래 행복하게 능력을 인정받고 살았을까요?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고 공명정대하지는 않죠. 세자가 왕위에 오르자 그는 모함을 받습니다. 목숨 걸고 도망쳐 국경까지 가죠. 밤이 깊어 여인숙에서 하룻밤 묵으려 하자, 여인숙 주인이 단호하게 말합니다.
“법령에 의해 여권이 없는 이를 투숙시키면 처벌받아요.”
이 말에 상앙은 기뻤을까요, 슬펐을까요? 결국 그는 잡혀서 죽임을 당합니다. 자신이 만든 국가 통제 시스템에 죽임을 당한 거죠.
출처 : 현장 컨설턴트가 알려주는 공급망 관리(SCM) 성공 전략 (주호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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