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낳으면 은행 빚 갚아드려요”
인터넷 기사를 뒤적이다 눈에 확 띈 기사입니다. 그 소문을 듣지 않았다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기사였습니다. 셋째를 제 인생에서 가질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죠. 온 나라를 뒤집어 놓고, 수많은 어른들이 “미안해 OOO” 챌린지를 이어가고 있다는 기사가 바로 아래에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또 애를 낳으면 은행 빚을 갚아 준다는 정책이 만들어지고 대대적으로 홍보되고 있는 겁니다.
도저히 사람이 한 짓이라 보이지 않는 ‘입양아를 학대하고 사망하게 만든 사건’에 대한 탐사보도를 보며 이해가 안 되는 점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아이도 있고, 입양하자마자 학대를 저지른 것 같은데 왜 처음부터 입양을 했나?’하는 의문인데요. 얼마 후,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떠도는 소문이라 팩트 체크는 되지 않았지만, 소문은 이랬습니다. 학대를 저지른 부부가 서울에서 아파트 청약을 받기 위해(청약점수에 부양가족 수가 영향을 미치나 봅니다) 입양을 했다는 겁니다. 마침 그날 신문에는, 청약점수를 높이기 위해 자신과 살고 있는 동거남이 아닌 아이가 셋인 모르는 남자와 위장 결혼을 해 분양을 받고 바로 이혼해서 청약이 무효가 된 사건이 보도되었습니다. 합리적인 의심을 거둘 수 없었습니다. 깊은 고민과 사후 영향성을 치밀하게 검토하지 않은 정책과 제도는 이렇게 무서운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셋째를 낳으면 적지 않은 돈을 준다고 합니다. 대부분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돈을 위해 아이를 셋까지 낳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돈을 위해 셋째 아이를 낳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과연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행복하게 자랄 수 있을 거라 장담할 수 있을까요?
갑자기 왜 SCM을 다루는 책에서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냐고요? 관련이 있습니다. 제가 처음 SCM을 접했을 때 혼란스러웠던 부분 중 하나가 그 실체가 무엇인지 헷갈리는 것이었습니다. 2000년 초반 즈음 미디어에 SCM이라는 용어가 회자되기 시작하더군요. 그런데 기사를 읽어 보면 제가 알던 정보 시스템이 아니라 ‘이론’이나 ‘개념’이었습니다. 호기심에 책을 찾아보면서 관련된 제약 이론, 네트워크 편성 등 유사 개념을 알게 되었죠. 그리고 얼마 후, SCM 구축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는데요. 제가 맡게 된 업무는 전체 회사의 SCM 체계를 구축하는 일이었고, 그 일 대부분은 기존 프로세스(일하는 방법과 절차)를 SCM 체계에 맞도록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프로세스 혁신, 혹은 PI(Process Innovation)라고 불렀습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 보면, SCM은 경영 이론이었고, 프로세스 모음이기도 했다가, 컴퓨터 시스템이라는 실체이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여러 용어가 혼재되면서 각각을 별개로 인식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3가지 모두가 SCM의 실체였다는 것을 한참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죠. 그리고 이런 혼란은 SCM뿐 아니라 대부분의 정보 시스템, 나아가 사회 현상까지 유사한 형태를 띠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론으로 시작되지만, 제도나 법규로 만들어지고 이를 잘 운영하기 위한 방법으로 정보 시스템의 지원을 받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 거죠. 이것을 하나의 ‘체계가 만들어지는 과정’ 정도로 이름 붙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 사례를 들어볼까요?
코로나로 일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중에 가장 큰 변화는 일상 생활 속 마스크 착용입니다. 이것을 ‘체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의 틀로 설명해 보죠.
코로나 환자가 늘어나면서 이를 막기 위한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론이 하나 나옵니다. 코로나는 침방울 같은 비말을 통해 전파된다는 것이었죠. 비말 전파를 막을 방법이 연구되었고 가장 효과적이라 선택한 것이 마스크였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마스크 착용을 미디어를 통해 권유했습니다. 그러다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착용을 의무화하는 제도가 만들어집니다. 이를 어기면 벌금도 부과됩니다. 급기야 지하철을 타기 위해 교통카드를 태깅 하면 “마스크를 착용해 주세요.”라는 말이 게이트에서 나오죠. 지금은 이 정도지만 여기에 안면인식 기술을 더한다면 마스크 미착용 시 게이트가 열리지 않게 해 지하철 탑승 자체를 막는 시스템을 구성할 수도 있을 겁니다. 실제로 국내 몇몇 회사에서는 회사 출입구에 안면인식 장비를 설치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출입이 안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론이 제도화되고 그 제도가 잘 지켜지고 운영되도록 정보 시스템이 지원하는 체계가 만들어지는 것은 대체로 이런 과정을 거칩니다. SCM도 똑같은 과정을 거쳐왔고 그 결과 이론, 제도, 시스템이라는 세 개의 얼굴을 가지게 된 겁니다.
엘리 골드렛이 1984년 ‘더골(The Goal)’이라는 비즈니스 소설을 발표합니다. 이 소설을 통해 제약이론을 발표했는데, 소설은 전 세계 초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제약이론과 골드렛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집니다.
제약이론은 TOC(Theory of Constraints)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제약조건을 지속적으로 개선하여 공급망 전체 성과를 향상시킨다는 이론입니다. 제약은 ‘공급망의 가장 취약한 부분’ 혹은 ‘병목(Bottleneck)’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그림으로 단순화해 보면 다음과 같을 겁니다. 공급망 전체 처리 가능량을 파이프로 표시하면 중간중간에 A, B, C와 같이 공급망 전체의 처리량을 줄이는 병목이 발생하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A, B, C 세 지점이 제약 조건들이고 이를 순차적으로 개선해 없애면 공급망 전체 성과가 파이프라인 원래 크기만큼 향상되겠죠. 단순화하면 이것이 ‘제약이론’입니다.
이제 이 이론을 바탕으로 제도를 만들 차례입니다. 실제로는 수많은 제도가 필요할 겁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이해를 돕기 위해 가장 단순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제도는 궁극적으로 ‘일하는 절차의 모음’이 될 겁니다. ‘일하는 절차’는 프로세스라 부르기도 합니다. 제약이론을 위한 제도로 앞에서 ‘제약을 최소화한 공급계획’을 제시했습니다. A, B, C 세 개의 제약으로 표시된 공급망 전체 제약을 최소화하고 이를 공급계획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몇 단계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가장 먼저, 공급망 전체의 제약조건을 찾아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A, B, C라는 세 가지 제약 조건을 찾아냈지요.
두 번째, 찾아낸 제약조건 중에서 가장 큰 것을 식별합니다. A가 될 겁니다. 식별하면 제약조건 A를 제거합니다.
세 번째, 제약조건 A가 없어진 다음 가장 큰 제약조건을 식별합니다. C가 되겠죠. 다시 C를 제거합니다. 이렇게 순차적으로 가장 큰 제약조건을 제거합니다. 이 과정을 제약조건이 없어질 때까지 반복합니다. 이론적으로는 제약조건이 전혀 없는 상태가 가능하겠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해요. 자원이 무한대로 들어가게 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비용 대비 효율이 가장 높은 수준까지 반복합니다.
제약이론은 ‘제약조건을 지속적으로 개선하여 공급망 전체의 성과를 향상시키는 것’입니다. 공급망 전체 성과를 향상시키는 일은 다른 말로 하면 ‘전체 최적화’입니다. 그런데 앞에서는 최적화를 설명하면서 글로벌 운영을 통한 비용과 재고 최소화를 말했습니다. 어느 쪽이 맞는 것일까요? 답은 ‘둘 다 맞다’입니다.
과거에는 기업 전략이 양자택일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격은 비싸지만 품질이 탁월한 제품을 만들거나, 품질은 기본 기능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정도이지만 경쟁자보다 가격을 현격히 싸게 가져가는 저가 전략을 택했죠. 그렇지만 지금은 기술혁신,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통해 가격은 더 싸고 품질과 성능은 더 우수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시장을 지배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이 정도도 벅찬데 최근에는 기업이 이익 극대화에만 몰입할 것이 아니라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함께 창출해야 한다고 합니다. 기업의 비재무적인 성과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ESG(환경, 사회, 지배 구조) 경영이 그것이죠. 이처럼 경제적 가치 창출과 사회적 가치 창출, 차별화 전략과 저가 전략, 성공과 실패, 창의성과 생산성 등 서로 상충되어 보이고 양립이 어려워 보이는 여러 목표와 요소들을 동시에 달성해가는 경영 방식을 패러독스 경영(paradoxical management)이라고 합니다. SCM도 이런 상황에 놓인 겁니다. 모르긴 해도 길지 않은 미래에 ‘ESG 기반 SCM’ 같은 용어가 나오겠죠.
패러독스 경영을 SCM에 적용해 본다면 위 그림과 같은 대화가 가능할 거예요. SCM 태동 배경인 제약이론을 기반으로 제약을 계속 줄여나가면 처리량은 늘어납니다. 문제는 투입되는 자원이 많아지는 것이죠. 그래서 처리량을 최대한 늘리면서 비용과 재고는 줄이라는 상반되는 요구가 떨어집니다. 10년 동안 죽을 듯이 노력해서 겨우 두 가지를 충족하는 최적의 조건을 찾았는데 코로나19가 터지고 ‘안전’이라는 조건이 추가됩니다. 이것만 해도 미칠 노릇인데 환경과 사회를 고려하며 잘 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SCM을 구축하고 이해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는 겁니다.
제품에 대한 소비자 요구도 까다로워졌습니다. 보통 무언가를 만들어 팔기 시작하면 제한된 종류의 물건을 적은 양만 만들어 팝니다. 사업이 점점 잘 되면 제품 종류와 상황에 따라 두 가지 길을 걷습니다. 제품 다양성을 줄이고 몇 가지만 대량으로 만들어 팔거나, 반대로 많은 종류의 제품을 하나 또는 소량으로 만들어 팝니다. 전자를 전문용어로 MTS(Make To Stock) 전략이라 합니다. 대량으로 생산해서 재고를 쌓아두고 판매하는 방식이죠.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일상용품이 이 전략을 따릅니다. 비누나 샴푸부터 생수, 과자, 소주 등 마트 선반에 올려져 판매되는 제품은 대부분 MTS 생산 전략에 따라 대량생산을 하는 제품입니다. 반면 고객 주문을 받고 만들기 시작하는 후자의 생산 전략을 MTO(Make To Order), 주문생산이라 합니다. MTO 전략은 주로 중공업이나 크기가 큰 제품에 사용됩니다. 큰 빌딩에 들어가는 압축기, 전력계통 제품, 엘리베이터 등이 여기에 해당하죠.
대량생산은 동일한 유형 제품을 수십만, 수백만 개씩 만들어 팔기 때문에 가격을 낮출 수 있습니다. 가격이 낮아지면 구매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지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많이 팔 수 있죠. 특히 개발과 마케팅 비용처럼 하나의 제품이 몇 개 팔리더라도 변동이 크지 않은 항목이 있어 이익이 커집니다. 하지만 마케팅에 실패할 경우 팔리지 않는 재고를 감수해야 하죠. 소비자 입장에서는 나에게 딱 맞춰진 제품은 아니지만 가격이 싸기 때문에 구매를 하게 되겠죠.
주문생산은 고객 요구사항(스펙과 수량)에 맞춰 만들기 때문에 팔리지 않는 제품 재고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그렇지만 고객 요구에 그때그때 맞추기 위해서는 다른 희생이 필요하죠. 설계가 주문마다 달라질 것이고, 생산 라인도 표준화·자동화되기 어렵습니다. 고객 요구가 까다로울수록 설계 기간과 생산 기간이 길어지겠죠. 고객 입장에서는 오래 기다려야 하고 자칫 잘못하면 약속된 날짜에 물건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두 가지 전략은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오른쪽 상단 사분 면입니다. Mass Customization, 즉 대량맞춤 생산입니다. 과거에는 패러독스의 영역이었고,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마법사가 필요했죠. 그런데 지금은 적지 않은 기업이 이 말도 안 되는 미션을 해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양립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던 것이 지금은 가능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그 기술의 핵심에는 IT(Information Technology, 정보기술)가 있습니다. IT가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
설계와 생산에 필요한 시간을 단축했습니다. 만약 종이로 설계도를 그린다면 새 설계도를 그리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겠죠. 지금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유사한 설계를 찾아 복사한 다음 필요한 부분만 수정하면 됩니다. 그런데 설계를 변경만 해서는 안 됩니다. 이 설계가 실제 생산되는 제품에 반영되어야 합니다. 종이로 설계도를 그렸다면 그 설계도를 생산 라인으로 가져가 일일이 설명해야 했을 겁니다. 만약 애플이나 삼성처럼 글로벌 기업이라 생산 법인이 해외에 있다면 어떨까요?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걸릴 것이고, 여러 번 시행착오를 거칠 겁니다. 그 사이에 트렌드가 바뀌어 버릴 수 있습니다. IT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터넷, 모바일 기기 등을 통해 설계 변경과 이에 따른 생산계획 변경 등을 거의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있는 판매, 생산 법인과 공유할 수 있게 된 거죠. 그래서 SCM을 논하면서 컴퓨터 시스템을 따로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출처 : 현장 컨설턴트가 알려주는 공급망 관리(SCM) 성공 전략 (주호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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