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31일, 전 세계 금융계 및 재계의 관심을 끈 중요한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국제회계기준재단(이하 IFRS 재단) 산하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이하 ISSB)라는 조직이 '지속가능성공시기준(SDS: Sustainability Disclosure Standards)' 공개 초안을 발표한 것이 그것입니다. 기업들은 이미 ESG 정보를 GRI(글로벌 리포팅 이니셔티브), SASB(지속가능회계기준위원회), TCFD(기후관련 재무정보 공개 TF) 등 널리 알려진 글로벌 ESG 공시 지침을 활용하여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담아 공개하고 있는데, 왜 또 이런 새로운 '지속가능성공시기준'(이하 IFRS SDS)이 주목을 받는 걸까요?
한마디로, 글로벌 주요 투자자들을 비롯한 다양한 이해관계자 그룹(전 세계 750여 기관)의 강한 요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투자자들은 기업에 대한 투자 결정을 할 때 신뢰할 수 있고 비교 가능한 ESG 리스크 및 기회 정보가 필요한데, 기업들이 공시하는 정보는 이와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즉, ESG 공시 지침을 제공하는 기구들은 많지만 '재무제표와 호환되면서도 전 세계적으로 비교가능하고 일관성 있는 ESG 공시기준'은 아직 존재하지 않으니, 이런 기준을 만들어 달라고 IFRS 재단에 요청한 것입니다.
전 세계는 이제, 기존에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를 산하에 두고 있던 IFRS 재단이 IASB와 ISSB 양대 기구를 거느리게 된 것에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건, 기업에도 절실한 문제입니다. 기업이 ESG 성과를 공시할 때, 전 세계 140개 이상의 국가가 사용하고 있는 IFRS 재단의 회계기준(※IFRS 재단 산하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가 제정)을 토대로 재무성과를 보고하는 것과 적어도 비슷한 수준의 통일된 기준이 있다면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아 좋기 때문이죠. 흥미로운 것은 또 있습니다. 주요국 및 글로벌 규제기구들의 강력한 지지를 확보한 ISSB가, 경쟁 관계라 할 수 있는 핵심 ESG 공시 지침 제공 기구들을 속속 합병하거나 상호 협력 관계를 돈독히 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ESG 공시지침을 제공하는 기존의 주요 기구에는 GRI, SASB, TCFD '3대장' 외에 IIRC(국제통합보고위원회), 기후정보공개표준위원회(CDSB) 등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SASB와 IIRC는 2021.6월 통합하여 VRF(밸류 리포팅 파운데이션)이라는 새로운 조직으로 탄생했습니다. (참고로 이 VRF를 이끄는 실세는 SASB라는 점을 기억해 두시면 좋습니다) 그리고 CDSB는 2022년 1월 ISSB가 합병했습니다. 뒤이어 ISSB는 2022년 6월까지 작년에 만들어진 VRF까지 품는다는 계획입니다. 그렇게 되면, 남는 기구는 ISSB, GRI, TCFD가 됩니다.
이제 눈여겨볼 대목 두 가지가 남았는데요. 하나는 2022년 3월 24일, ISSB와 GRI가 상호 ESG 공시기준 통합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GRI 기준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ISSB가 2022년 3월 31일 발표한 '지속가능성공시기준(SDS)' 공개 초안이 TCFD 공시 체계(framework)를 전면 적용하며 SASB 기준의 강점(※ 산업별 특성을 감안한 접근)을 적절히 활용하여 설계되었다는 것입니다. 글로벌 ESG 공시 표준화가 명확하게 ISSB를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ISSB가 발표한 지속가능성공시기준(SDS) 공개 초안은 '일반' 및 '기후 분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IFRS S1 지속가능성 관련 재무 공시를 위한 일반 요구사항'과 'IFRS S2 기후 관련 공시'가 그것입니다. 이는 투자자가 ESG 정보를 별도로 취급하지 않고 일반 재무제표와 연계하여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겠다는 것, 그리고 ESG 중 가장 시급한 이슈인 '기후 관련' 공시 표준화 작업을 우선 추진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이 초안 두 가지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TCFD의 4대 영역(지배구조, 전략, 위험관리, 지표 및 목표)을 공시의 기본 틀로 적용하고, 산업별 특성을 반영한 ESG 지표로 글로벌 주요 기업의 호응을 받고 있는 미국의 SASB 기준을 보완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특히, Scope 3(공급망 등 밸류체인에서 발생하는 간접적인 온실가스 배출을 의미)에 대한 공시를 조건 없이 의무화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ISSB는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의견 수렴을 거친 후 2022년 말까지 이 두 공시기준을 확정하고, 다른 분야 즉 여타 E 분야(생물다양성, 水 등), S, G 분야 공시기준도 순차적으로 만들어 간다는 계획입니다. (※ 이들 공시기준을 모두 아우르는 명칭은 궁극적으로 IFRS SDS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ISSB의 움직임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Building Blocks Approach'입니다. ISSB는 글로벌 금융시장 및 각국이 ESG 공시를 위한 최소 요구사항으로 '지속가능성공시기준(SDS)'을 채택하도록 하고, 각국의 특성에 따라 법 혹은 규제 차원에서 필요한 사항이 있으면 추가해 갈 수 있도록 하는 접근법을 제안하여 많은 관심과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략이 ISSB 중심의 ESG 공시 표준화를 향한 여정에 순풍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소 시간은 걸리겠지만, 그동안 복잡했던 ESG 공시 체계가 보다 간결해지고 통합될 것이라는 전망에 유념하면서 IFRS 재단의 움직임을 기업의 ESG 경영 혹은 관련 사업 전개에 선제적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향후 현행 지속가능경영보고서와 같은 형태가 아닌, 기존 사업보고서와의 통합 혹은 실시간 온라인 통합보고서 형태로의 진화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ESG 관련 시스템 구축을 고민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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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 수석연구원 | 삼성경제연구소
현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SG Quarterly 편집장)
일본 히토츠바시(一橋)대 대학원 수료
서울대 경영학과, 동 대학원 경제학 석사